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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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9 새책 인생이 풀리는 만능 생활 수학(크 리스티안 헤세 지음 강희진 옮김)=독 일의 유명한 수학자인 저자는 수학은 세상 모든 일에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 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도 교각이 버티고 있는 것 도 모두 수학 덕분이다. 수학은 일상 속 문제를 풀 때도 도움을 준다. 마트 에서 줄 서기부터 모두가 행복한 가사분담까지, 여러 가 지 문제를 푸는 수학 감각이 빛난다. 해나무. 1만6000원. 나, 티투바, 세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2018년 노벨문학상의 대안으로 만들어 뉴 아카데미 문학상 을 수상한 작 가의 대표작이다. 17세기 말 미국의 작 은 마을 세일럼에서 마녀로 몰렸던 흑 인 여성 노예 티투바의 삶을 그렸다. 역사 속 한 줄 기록으로 남아 있던 인물이 작가의 상상으 로 새롭게 태어나 여성과 흑인, 유태인 등 타자 소수자들 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적 연대와 공감의 희망을 보여준 다. 은행나무. 1만3000원. 의 변혁(백낙청 임형택 도진 지음 백영서 엮음)=1919년과 2019년의 대화를 통해 3 1운동 100주 년을 조명했다. 그 과정에 역사학, 한문 학,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함께했다. 이 들은 3 1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을 꿰뚫으며 3 1의 의미를 되짚고, 그 이후 누적돼 온 운동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창비. 1만8000원.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표지는 파 란색이에(엘리아스 그리그 지음 재성 옮김)=서점을 누구나 머물고 싶 고 새로운 흥미를 만나는 공간으로 만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점에서 일 하는 저자가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고 객을 만나며 일기처럼 적은 일에선 그 답이 읽힌다.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바람직 한 공존을 보여준다. 뮤진트리. 1만4000원. 딱, 명만 초대합니다!(오채 지음 한지선 그림)=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을 좋아하는 주인공은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뜻밖의 여행길에 오른다. 시작은 설렜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은 혼란의 연속이다. 성장통을 겪듯 아이 들은 그 속에서 선택과 결정을 하고 확 신과 후회를 반복하면서 한 뼘 더 성장한다. 그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았다. 문학과지성사. 1만원. 조선셰프 서유구의 꽃음식 이야기 (풍석문화재단음식연구소 지음)=조선 최고의 요리백과 정조지 에 담긴 꽃을 활용한 음식 40가지를 선별했다. 죽과 탕, 전과 면, 꽃을 볕에 말려 음식에 활 용하는 법, 술에 꽃 향을 들이는 법 등 다양한 조리법을 연구하고 복원해냈다. 이를 활용한 현대 음식 47종도 함께 실었다. 사계절의 꽃 음식 이야기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자연경실. 2만원. 김지은기자 [email protected] 어느 교사가 말했다. 교사라는 직 업이 한강에 떠 있는 오리배를 닮았 다고 생각해요… 가르친다는 게, 특 히 초등학생을 가르친다는 게 밖에 서 볼 때는 참 평화롭고 쉬운 일처 럼 비취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평화 롭게 보이기 위해서 그 안에서 우리 는 쉼 없이 페달을 밟아야 하죠. 청소년들의 희망 직업 상위권에 교사가 있다. 운동선수,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 선호도가 바뀌고 있다지만 초 아이들에게 교사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그 길에 들어선 새내기가 그 직업의 세계 를 가감없이 풀어낸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 비장하다. 신규교사 생존기 . 살아남느냐, 마느냐 의 갈림길에서 고상훈 교사는 살아남았고 초등학교 선생님 으로 보낸 지난 3년의 치열했던 삶과 고민을 털어놨다. 1 더하기 1 가르 치는 게 뭐가 어렵 냐? 나도 지금 당장 가르치겠구만. 등학교 선생님이면 편한 거지. 애들 영 화 보여주고 축구하면 되는 거 아냐? 그는 초등교사가 된 이래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자신의 힘든 페달질 을 사소하게 여기는 일이 속상했다. 신규교사 생존기 는 오리배가 안전하게 강을 건너기 위해 얼마나 무수한 페달질이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경 험담으로 짜였다. 아는 길도 돌아가고 쉬운 것도 실수하 는 신규 교사 지만 아이들을 위한 마음 하나로 용기와 패 기가 넘쳤던 시절이 그곳에 있다.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나 삶을 가르치는 이들이 선생(先 生)님인 만큼 그들보다 앞서 살아오면서 얻은 실패의 소 중함을 나누려 열었던 교실자치, 소아암 환아들을 위해 진 행한 인권 프로젝트, 아이들의 다독증후군을 고쳐주려 시 도한 새로운 독서교육 등 신규 교사의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화가 펼쳐진다. 처음 담임교사가 되면서 이들을 편견없이 생각하기 를 좌우명으로 삼은 사연도 나 온다. 하지만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한 자신이 실망스러웠고 그럴 땐 상처를 받았을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아직은 선생님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지만, 나중에라도 선생님한테 서운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이야기해 줘. 기다리고 있을게. 한그루. 1만3500원. 진선희기자 이책 1 더하기 1 가르치는 게 뭐가 어렵냐 고 하지만 고상훈 교사는 초등 선 생님의 처지가 평화롭게 강을 건너기 위해 쉬지 않고 페달질을 해야 하 는 오리배를 닮았다고 했다. 참나무 줄기 그런 거 해서 깔깔 한 보리쌀에 넣어서 만든 죽 우리 한테 줘. 그런 거 동생은 안 먹었 어. 살려고 하니까 먹어지는 거라. 아버지도 없으니까 남들처 럼 벌어올 수도 없고. 다 굶어 죽 을 건데 산 것도 기적이지. 1938년생으로 제주 4 3 당시 제주읍 봉개리에 거주했던 강숙자 할머니. 아버지는 대전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됐고 막내 여동생은 굶어 죽었다. 이모 둘도 희생당했다. 그 무사 경 죄어신 사람들을 죽 라며 4 3사건 생각만 하면 징 글징글하다 고 말한다. 강숙자 할머니처럼 4 3의 그날 과 그날 이후를 간신히 헤쳐온 제 주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창립 30주년 맞은 제주4 3연구소에서 4 3 생활사총서 1권으로 내놓은 4 3과 여성, 살아낸 날들의 기록 이다. 구술채록집에는 8명의 사연이 담겼다. 그들은 1922~1938년생으 로4 3무장봉기가 발발한 1948년 을 기준으로 27~11살이었다. 구술 자들은 어느덧 여든 살이 넘었다. 4 3을 건너온 이들이 고령으로 하 나둘 세상을 뜨거나 기억력이 흐 릿해지는 현실에서 이들이 들려주 는 이야기는 값지다. 누구하나 기 구하지 않은 삶이 없고 여성으로 서 겪었던 아픔은 더했다. 채계추 할머니는 4 3 때 밀가루 배급을 받으러 갔다가 진통을 느 꼈다. 말 구르마(달구지)를 얻어 타고 불타버린 집터에 임시로 만 든 움막으로 들어가자마자 아기를 낳았다. 산후에 피를 맑게 한다는 메밀가루는 구경도 못했고 바닷고 기가 없어서 자리를 구해 국을 끓 여 먹었다. 이승례 할머니는 북촌 리의 오늘을 일군 건 동네 여성들 의 물질이라고 말했다. 강숙자 할 머니는 겨울철 살이 끊어질 정도 로 죽을락 살락 물질을 해 재산을 모으고 집터를 샀다. 이문자 할머 니는 문도 없이 가마니 하나 걸친 채 살아야 했던 나날을 떠올렸다. 4 3을 연구하는 허호준 기자는 책머리에 실린 제주4 3과 여성의 기억 에서 4 3을 마주할 때 상상 할 수 없는 처절한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고, 경험한 이들의 고통과 기억을 공감하지 않고서는 4 3의 역사는 물론 4 3체험세대들을 온 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4 3시 기 여성들의 일상을 들여다봄으로 써 우리는 4 3의 전체상에 한 걸 음 더 나갈 수 있다 고 했다. 도서 출판각. 1만5000원. 진선희기자 [email protected] 참나무 줄기 넣은 죽, 살려니까 먹었지 오사카의 어디냐고?/ 그럼, 이쿠 노(生野)라면 알아들을라나?/ 자 네가 거부했던 무엇일 테니/ 꺼림 칙한 악취에게나 물어보게나./ 물 크러진 책상은 지금도 여전할 거 야./ 끝내 열지 못한 도시락도./ 빛바랜 꾸러미 그대로/ 어딘가 틀 어박혀 숨어 있을 거야. 재일 김시종 시인의 이카이노 시집 (1978)의 첫머리에 실린 보이지 않는 동네 의 일부다. 시 집은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조선인 들이 집단촌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시인은 이카이노 시집 을 두고 삶의 후반기 가시 작되는 작품집이라고 했다. 독자 들에겐 김시종의 문학과 사상의 궤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창 작집일 듯 싶다. 이카이노 시집 시작으로 계기음상(季期陰象) (1992), 석의 여름 (1998) 등 일본과 개의 조선, 그것들 사이의 틈새에 서 형성된 감응과 감각 등에 손을 내밀어온 김시종의 문학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세 권의 시집이 우리 말로 번역 출간됐다. 이들 시집은 이진경 심아정 카게모토 쓰요시 와다 요시히로 네 명이 역자로 참 여했고 한 권으로 합본해 묶였다. 계기음상 은 독립적인 단행본 으로 나온 적이 없는 시집이다. 대 체로 화석의 여름 광주시편 (1983) 사이에 쓰여진 시들로 이 루어졌다. 화석의 여름 은4 3의 피바람을 피해 제주를 떠나 밀항 자로 상륙한 날(6월 6일) 등 시인 의 삶에서 결정화된 상징적 시간 이 스며 있다. 말미엔 시인과의 대담을 실었 다. 초현실주의에 가장 크게 영향 을 받았다는 시인은 말한다. 대에 들어와서 시가 외면당하는 이유는 필자들이 독자들에게 보내 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자 기만의 세계에 보내기만 할 뿐. 그 리곤 그것을 두고 순수함이라고 하니 그건 틀린 소리지요. 시라는 것은 만인 공통의, 인간의 본성적 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에요. 도서출판 b. 1만5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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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새책 참나무줄기넣은죽,살려니까먹었지pdf.ihalla.com/sectionpdf/20191227-81938.pdf · 2019. 12. 26. · 날아가는 것도 교각이 버티고 있는 것 도 모두

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9

새책▶인생이 풀리는 만능 생활 수학(크

리스티안 헤세 지음 강희진 옮김)=독

일의 유명한 수학자인 저자는 수학은

세상 모든 일에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

다 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도 교각이 버티고 있는 것

도 모두 수학 덕분이다. 수학은 일상

속 문제를 풀 때도 도움을 준다. 마트

에서 줄 서기부터 모두가 행복한 가사분담까지, 여러 가

지 문제를 푸는 수학 감각이 빛난다. 해나무. 1만6000원.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2018년 노벨문학상의 대안으로 만들어

진 뉴 아카데미 문학상 을 수상한 작

가의 대표작이다. 17세기 말 미국의 작

은 마을 세일럼에서 마녀로 몰렸던 흑

인 여성 노예 티투바의 삶을 그렸다.

역사 속 한 줄 기록으로 남아 있던 인물이 작가의 상상으

로 새롭게 태어나 여성과 흑인, 유태인 등 타자 소수자들

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적 연대와 공감의 희망을 보여준

다. 은행나무. 1만3000원.

▶백년의 변혁(백낙청 임형택 도진

순 외 지음 백영서 엮음)=1919년과

2019년의 대화를 통해 3 1운동 100주

년을 조명했다. 그 과정에 역사학, 한문

학,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함께했다. 이

들은 3 1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을 꿰뚫으며 3 1의 의미를 되짚고, 그 이후 누적돼

온 운동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창비. 1만8000원.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표지는 파

란색이에요(엘리아스 그리그 지음 김

재성 옮김)=서점을 누구나 머물고 싶

고 새로운 흥미를 만나는 공간으로 만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점에서 일

하는 저자가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고

객을 만나며 일기처럼 적은 일에선 그

답이 읽힌다.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바람직

한 공존을 보여준다. 뮤진트리. 1만4000원.

▶딱, 일곱 명만 초대합니다!(오채

지음 한지선 그림)=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을 좋아하는 주인공은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뜻밖의 여행길에 오른다.

시작은 설렜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은

혼란의 연속이다. 성장통을 겪듯 아이

들은 그 속에서 선택과 결정을 하고 확

신과 후회를 반복하면서 한 뼘 더 성장한다. 그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았다. 문학과지성사. 1만원.

▶조선셰프 서유구의 꽃음식 이야기

(풍석문화재단음식연구소 지음)=조선

최고의 요리백과 정조지 에 담긴 꽃을

활용한 음식 40가지를 선별했다. 죽과

탕, 전과 면, 꽃을 볕에 말려 음식에 활

용하는 법, 술에 꽃 향을 들이는 법 등

다양한 조리법을 연구하고 복원해냈다.

이를 활용한 현대 음식 47종도 함께 실었다. 사계절의 꽃

음식 이야기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자연경실. 2만원.

김지은기자 [email protected]

어느 교사가 말했다. 교사라는 직

업이 한강에 떠 있는 오리배를 닮았

다고 생각해요… 가르친다는 게, 특

히 초등학생을 가르친다는 게 밖에

서 볼 때는 참 평화롭고 쉬운 일처

럼 비취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평화

롭게 보이기 위해서 그 안에서 우리

는 쉼 없이 페달을 밟아야 하죠.

청소년들의 희망 직업 상위권에 교사가 있다. 운동선수,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 선호도가 바뀌고 있다지만 초 중 고

아이들에게 교사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그 길에 들어선

새내기가 그 직업의 세계 를 가감없이 풀어낸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 비장하다. 신규교사 생존기 . 살아남느냐, 마느냐

의 갈림길에서 고상훈 교사는 살아남았고 초등학교 선생님

으로 보낸 지난 3년의 치열했던 삶과 고민을 털어놨다.

1 더하기 1 가르

치는 게 뭐가 어렵

냐? 나도 지금 당장

가르치겠구만. 초

등학교 선생님이면

편한 거지. 애들 영

화 보여주고 축구하면 되는 거 아냐? 그는 초등교사가 된

이래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자신의 힘든 페달질 을 사소하게 여기는 일이 속상했다.

신규교사 생존기 는 오리배가 안전하게 강을 건너기

위해 얼마나 무수한 페달질이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경

험담으로 짜였다. 아는 길도 돌아가고 쉬운 것도 실수하

는 신규 교사 지만 아이들을 위한 마음 하나로 용기와 패

기가 넘쳤던 시절이 그곳에 있다.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나 삶을 가르치는 이들이 선생(先

生)님인 만큼 그들보다 앞서 살아오면서 얻은 실패의 소

중함을 나누려 열었던 교실자치, 소아암 환아들을 위해 진

행한 인권 프로젝트, 아이들의 다독증후군을 고쳐주려 시

도한 새로운 독서교육 등 신규 교사의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화가 펼쳐진다. 처음 담임교사가 되면서 아

이들을 편견없이 생각하기 를 좌우명으로 삼은 사연도 나

온다. 하지만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한 자신이 실망스러웠고

그럴 땐 상처를 받았을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아직은

선생님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지만,

나중에라도 선생님한테 서운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이야기해 줘. 기다리고 있을게.

한그루. 1만3500원. 진선희기자

이 책

1 더하기 1 가르치는 게 뭐가 어렵냐 고 하지만 고상훈 교사는 초등 선

생님의 처지가 평화롭게 강을 건너기 위해 쉬지 않고 페달질을 해야 하

는 오리배를 닮았다고 했다.

참나무 줄기 그런 거 해서 깔깔

한 보리쌀에 넣어서 만든 죽 우리

한테 줘. 그런 거 동생은 안 먹었

어. 난 살려고 하니까 먹어지는

거라. 아버지도 없으니까 남들처

럼 벌어올 수도 없고. 다 굶어 죽

을 건데 산 것도 기적이지.

1938년생으로 제주 4 3 당시

제주읍 봉개리에 거주했던 강숙자

할머니. 아버지는 대전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됐고 막내 여동생은 굶어

죽었다. 이모 둘도 희생당했다. 그

는 무사 경 죄어신 사람들을 죽

여 라며 4 3사건 생각만 하면 징

글징글하다 고 말한다.

강숙자 할머니처럼 4 3의 그날

과 그날 이후를 간신히 헤쳐온 제

주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창립 30주년

을 맞은 제주4 3연구소에서 4 3

생활사총서 1권으로 내놓은

4 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이다.

구술채록집에는 8명의 사연이

담겼다. 그들은 1922~1938년생으

로 4 3무장봉기가 발발한 1948년

을 기준으로 27~11살이었다. 구술

자들은 어느덧 여든 살이 넘었다.

4 3을 건너온 이들이 고령으로 하

나둘 세상을 뜨거나 기억력이 흐

릿해지는 현실에서 이들이 들려주

는 이야기는 값지다. 누구하나 기

구하지 않은 삶이 없고 여성으로

서 겪었던 아픔은 더했다.

채계추 할머니는 4 3 때 밀가루

배급을 받으러 갔다가 진통을 느

꼈다. 말 구르마(달구지)를 얻어

타고 불타버린 집터에 임시로 만

든 움막으로 들어가자마자 아기를

낳았다. 산후에 피를 맑게 한다는

메밀가루는 구경도 못했고 바닷고

기가 없어서 자리를 구해 국을 끓

여 먹었다. 이승례 할머니는 북촌

리의 오늘을 일군 건 동네 여성들

의 물질이라고 말했다. 강숙자 할

머니는 겨울철 살이 끊어질 정도

로 죽을락 살락 물질을 해 재산을

모으고 집터를 샀다. 이문자 할머

니는 문도 없이 가마니 하나 걸친

채 살아야 했던 나날을 떠올렸다.

4 3을 연구하는 허호준 기자는

책머리에 실린 제주4 3과 여성의

기억 에서 4 3을 마주할 때 상상

할 수 없는 처절한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고, 경험한 이들의 고통과

기억을 공감하지 않고서는 4 3의

역사는 물론 4 3체험세대들을 온

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며 4 3시

기 여성들의 일상을 들여다봄으로

써 우리는 4 3의 전체상에 한 걸

음 더 나갈 수 있다 고 했다. 도서

출판각. 1만5000원.

진선희기자 [email protected]

참나무 줄기 넣은 죽, 살려니까 먹었지

오사카의 어디냐고?/ 그럼, 이쿠

노(生野)라면 알아들을라나?/ 자

네가 거부했던 무엇일 테니/ 꺼림

칙한 악취에게나 물어보게나./ 물

크러진 책상은 지금도 여전할 거

야./ 끝내 열지 못한 도시락도./

빛바랜 꾸러미 그대로/ 어딘가 틀

어박혀 숨어 있을 거야.

재일 김시종 시인의 이카이노

시집 (1978)의 첫머리에 실린

보이지 않는 동네 의 일부다. 시

집은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조선인

들이 집단촌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시인은 이카이노

시집 을 두고 삶의 후반기 가 시

작되는 작품집이라고 했다. 독자

들에겐 김시종의 문학과 사상의

궤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창

작집일 듯 싶다.

이카이노 시집 을 시작으로

계기음상(季期陰象) (1992), 화

석의 여름 (1998) 등 일본과 두

개의 조선, 그것들 사이의 틈새에

서 형성된 감응과 감각 등에 손을

내밀어온 김시종의 문학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세 권의 시집이 우리

말로 번역 출간됐다. 이들 시집은

이진경 심아정 카게모토 쓰요시

와다 요시히로 네 명이 역자로 참

여했고 한 권으로 합본해 묶였다.

계기음상 은 독립적인 단행본

으로 나온 적이 없는 시집이다. 대

체로 화석의 여름 과 광주시편

(1983) 사이에 쓰여진 시들로 이

루어졌다. 화석의 여름 은 4 3의

피바람을 피해 제주를 떠나 밀항

자로 상륙한 날(6월 6일) 등 시인

의 삶에서 결정화된 상징적 시간

이 스며 있다.

말미엔 시인과의 대담을 실었

다. 초현실주의에 가장 크게 영향

을 받았다는 시인은 말한다. 현

대에 들어와서 시가 외면당하는

이유는 필자들이 독자들에게 보내

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자

기만의 세계에 보내기만 할 뿐. 그

리곤 그것을 두고 순수함이라고

하니 그건 틀린 소리지요. 시라는

것은 만인 공통의, 인간의 본성적

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에요. 도서출판 b. 1만5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