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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EBS 2012. JUNE 수능방송, 방송 너머(Beyond Broadcasting)의 교두보 당연한 얘기겠지만 방송사의 가치는 그 방송사 콘텐츠의 가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BS 역시 마찬가지다. EBS 콘텐츠가 당대의 지적 관심과 감성적 본성을 제대로 양식화해 낼 때 그 존재감은 보다 분명해진다. 1980년대 계몽주의 시대에 <가정고교>가 있었다면, 21 세기 디지털 지식사회에는 <지식채널e>가 있다. 돌이켜 보면, EBS는 수신료 3%라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공적 재원에도 불구하고, 2000 년 공사화 이후 10여 년간 일취월장해 왔다. EBS 구성원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능방송을 통해 ‘정책’ 또는 ‘기획’의 개념을 방송제작과 방 송경영에 적용시킴으로써 외부 세계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이는 향후 DMB, MMS, 스마트화 등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EBS가 진취적으로 대 응을 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다. 그런 점에서 수능방송은 방송(Broadcasting)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브로드밴드 TV(Broadband TV)로 가기 위한 교두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능방송은 EBS에게 기회이기도 했지만 위기의 언어이기도 했다. 정부정책을 그대 로 실행해내는 기관의 어떤 부처처럼, 수능방송은 EBS로 하여금 방송‘사’이기보다 방송‘국’ 으로 더 각인되게 하는 요인이었다. 교과부로부터 내려오는 수능방송 특별교부금은 달콤했 지만, EBS가 독립된 방송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더없이 큰 짐이었다. 지금 EBS는 수능방송 으로부터 정책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한편으로, 정부정책을 따라가면 그런대로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안일한 만족에 빠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변화를 위한 내부의 채찍질 이 필요한 때이다. EBS의 Being Digital EBS는 다른 어떤 방송사보다 콘텐츠 혁신에 주목해야 하는 조직이다. 디지털 지식사 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환경의 디지털화는 전 통적인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물론 드라마, 심지어는 쇼·오락 장르에 이르기까지 ‘지 식원형’을 근간으로 한 방송콘텐츠 양식화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디지털 과학자 네그로폰테가 말한 ‘Being Digital’은 수세기 인간사의 지식, 정신세계, 감정 등을 디지털 세계로 전환할 것임을 선언한 말이다. 그리고 이 선 언은 지금까지 정확하게 맞아가고 있다. EBS는 이 말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방송사이다. 이를 위해서 EBS 구성원 들은 지식원형과 지식콘텐츠에 대해 전사(全社 그리고 戰士)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지식원형은 지식콘텐츠 제작의 씨알이 되는 것으로, 제작하고자 하는 지식콘텐츠의 과학적, 역사적, 사회적 근거가 되는 기초단위이다. 이는 대체로 학문세계에서 통용되 는 이론이나 개념 등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지식들은 지식원형 기획과정을 통해 방송 의 언어로 ‘재매개’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EBS 사람들은 학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EBS의 모든 구성원들은 콘텐츠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식원형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제작 과정, 노하우 등을 광범위하게 학습해야 한다. 지식콘텐츠에서 지식채널, 지식미디어로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EBS 콘텐츠가 이와 같은 경향을 내면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명 과 수학>은 최근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 외에도 <다큐프라임>에 등장하는 여러 콘텐츠들은 지식원형 기획과 발굴의 과정을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사실 EBS는 ‘참 좋은 방송’에서 ‘지식채널’로 방송사 로고가 바뀌기는 했지만 한동안 실질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없었다. 지식채널이라는 개념은 <지식채널e>만이 힘겹게 끌고 갈 뿐 여타의 콘텐츠들은 별로 ‘지식채널’스럽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다큐멘터리 블록 편성이 단행되고, 그 것을 담고자 하는 제작진의 열정이 콘텐츠에 오롯이 쏟아짐으로써 지식콘텐츠와 지식채널은 양적, 질적으로 분명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지금 EBS는 공사화 이후 거의 최초로 이른바 ‘흐름’(flow)이라는 편성개념이 적용되어 있는 상태이다. 시청자들이 EBS라는 채널과 그 채널의 시간대별 콘텐츠 장르 및 색깔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EBS 콘텐츠, 특히 다큐멘터리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각각의 콘텐츠가 지식원형에 기반하는 고유성을 가졌다는 것이고 그것이 편성의 특성으로 드 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식채널의 편성개념을 완성해야 할 때이다. 모든 프로그램들은 지식채널이라는 편성 개념 안에서 재탄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트랜스미디어, n스크린, 콘텐츠 생태계 등 컨버전스 미디어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EBS의 ‘지식채널’은 전통적인 방송의 마 지막 버전에서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로의 전환에 복무하는, EBS에게는 매우 역사적인 개념인지도 모른다. EBS, 지식 채널에서 지식 미디어로 거듭나기 EBS는 Broadcasting TV에서 Broadband TV로 전환되고 있 는 작금의 변화 과정이 함의하는 바, 그것이 EBS에게 어떤 노 동행위와 인식론적 전환을 요구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EBS 가 지식콘텐츠에서 지식채널, 종국에는 컨버전스 지식미디어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기를 바란다. 임종수 세종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Happiness Knowledge & Cultur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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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Knowledge & EBS Culture EBS, 지식 채널에서about.ebs.co.kr/files/about/files/pr/magazine201206/20-21.pdf · 이는 향후 dmb, mms, 스마트화 등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2120

EBS 2012. JUNE

수능방송, 방송 너머(Beyond Broadcasting)의 교두보

당연한 얘기겠지만 방송사의 가치는 그 방송사 콘텐츠의 가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BS 역시 마찬가지다. EBS 콘텐츠가 당대의 지적 관심과 감성적 본성을 제대로 양식화해

낼 때 그 존재감은 보다 분명해진다. 1980년대 계몽주의 시대에 <가정고교>가 있었다면, 21

세기 디지털 지식사회에는 <지식채널e>가 있다.

돌이켜 보면, EBS는 수신료 3%라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공적 재원에도 불구하고, 2000

년 공사화 이후 10여 년간 일취월장해 왔다. EBS 구성원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능방송을 통해 ‘정책’ 또는 ‘기획’의 개념을 방송제작과 방

송경영에 적용시킴으로써 외부 세계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이는 향후 DMB, MMS, 스마트화 등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EBS가 진취적으로 대

응을 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다. 그런 점에서 수능방송은 방송(Broadcasting)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브로드밴드 TV(Broadband TV)로 가기 위한 교두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능방송은 EBS에게 기회이기도 했지만 위기의 언어이기도 했다. 정부정책을 그대

로 실행해내는 기관의 어떤 부처처럼, 수능방송은 EBS로 하여금 방송‘사’이기보다 방송‘국’

으로 더 각인되게 하는 요인이었다. 교과부로부터 내려오는 수능방송 특별교부금은 달콤했

지만, EBS가 독립된 방송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더없이 큰 짐이었다. 지금 EBS는 수능방송

으로부터 정책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한편으로, 정부정책을 따라가면 그런대로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안일한 만족에 빠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변화를 위한 내부의 채찍질

이 필요한 때이다.

EBS의 Being Digital

EBS는 다른 어떤 방송사보다 콘텐츠 혁신에 주목해야 하는 조직이다. 디지털 지식사

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환경의 디지털화는 전

통적인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물론 드라마, 심지어는 쇼·오락 장르에 이르기까지 ‘지

식원형’을 근간으로 한 방송콘텐츠 양식화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디지털 과학자 네그로폰테가 말한 ‘Being Digital’은 수세기 인간사의

지식, 정신세계, 감정 등을 디지털 세계로 전환할 것임을 선언한 말이다. 그리고 이 선

언은 지금까지 정확하게 맞아가고 있다.

EBS는 이 말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방송사이다. 이를 위해서 EBS 구성원

들은 지식원형과 지식콘텐츠에 대해 전사(全社 그리고 戰士)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지식원형은 지식콘텐츠 제작의 씨알이 되는 것으로, 제작하고자 하는 지식콘텐츠의

과학적, 역사적, 사회적 근거가 되는 기초단위이다. 이는 대체로 학문세계에서 통용되

는 이론이나 개념 등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지식들은 지식원형 기획과정을 통해 방송

의 언어로 ‘재매개’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EBS 사람들은 학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EBS의

모든 구성원들은 콘텐츠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식원형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제작 과정, 노하우 등을 광범위하게 학습해야 한다.

지식콘텐츠에서 지식채널, 지식미디어로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EBS 콘텐츠가 이와 같은 경향을 내면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명

과 수학>은 최근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 외에도 <다큐프라임>에 등장하는 여러

콘텐츠들은 지식원형 기획과 발굴의 과정을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사실 EBS는 ‘참 좋은 방송’에서 ‘지식채널’로 방송사 로고가 바뀌기는 했지만 한동안 실질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없었다. 지식채널이라는 개념은 <지식채널e>만이 힘겹게 끌고 갈 뿐 여타의

콘텐츠들은 별로 ‘지식채널’스럽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다큐멘터리 블록 편성이 단행되고, 그

것을 담고자 하는 제작진의 열정이 콘텐츠에 오롯이 쏟아짐으로써 지식콘텐츠와 지식채널은

양적, 질적으로 분명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지금 EBS는 공사화 이후 거의 최초로 이른바 ‘흐름’(flow)이라는 편성개념이 적용되어 있는

상태이다. 시청자들이 EBS라는 채널과 그 채널의 시간대별 콘텐츠 장르 및 색깔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EBS 콘텐츠, 특히 다큐멘터리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각각의 콘텐츠가 지식원형에 기반하는 고유성을 가졌다는 것이고 그것이 편성의 특성으로 드

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식채널의 편성개념을 완성해야 할 때이다. 모든 프로그램들은 지식채널이라는 편성

개념 안에서 재탄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트랜스미디어, n스크린, 콘텐츠 생태계 등

컨버전스 미디어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EBS의 ‘지식채널’은 전통적인 방송의 마

지막 버전에서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로의 전환에 복무하는, EBS에게는 매우 역사적인

개념인지도 모른다.

EBS, 지식 채널에서

지식 미디어로

거듭나기EBS는 Broadcasting TV에서 Broadband TV로 전환되고 있

는 작금의 변화 과정이 함의하는 바, 그것이 EBS에게 어떤 노

동행위와 인식론적 전환을 요구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EBS

가 지식콘텐츠에서 지식채널, 종국에는 컨버전스 지식미디어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기를 바란다.

글임종수 세종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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