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뮤지컬 산업과 팬들 - 대학신문pdf.snunews.com/1929/192909.pdf · 2016-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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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초연을 올린 「빈센트 반 고흐」 이후 뚝
심 있게 창작 뮤지컬만을 올리는 HJ컬쳐 한승원
대표. 메이저 기획사가 해외 유수의 작품을 바탕
으로 화려한 스타 캐스팅을 통해 작품을 홍보하는
상황에서 그는 “작품이 스타가 되는 제작사가 돼
야겠다고 결심했다”고 HJ컬쳐의 출발점을 회상했
다. 그래서 HJ컬쳐는 창작 뮤지컬을 하되, 모두가
다 아는 소재를 선택해 관객들의 진입장벽을 낮췄
다. 이런 전략을 잘 보여주듯 고흐를 시작으로 살
리에르, 라흐마니노프 등 유명한 예술가를 내세운
창작 뮤지컬들이 만들어졌다. 이 ‘예술가 시리즈’
는 실제로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빈센트
반 고흐」는 일본으로 수출되는 쾌거를 달성하기
도 했다.
HJ컬쳐에서 창작 뮤지컬을 올리는 과정은 다음
과 같다. 우선 소재를 찾고 대본 개발에 착수한 후
작곡가를 섭외해 음악을 붙인다. 이후 스태프를 모
집하고 배우를 선발하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
다. 여기까지가 공연이 올라가기 전 밑그림을 그리
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
다. 한 대표는 “실제로 공연이 실행되는 프로덕션
단계 이후에도 공연을 평가받고 손익을 정산하는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가 남아 있다”며 “이 단계를
통해서 공연이 다음에도 또 올라와도 될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 지가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HJ컬쳐가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
은 소재, 대본, 음악이다. 소재, 대본, 음악이 이야
기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작품이 스타가 되는
제작사가 되기로 한 만큼 한 대표는 “어떤 이야기
를 할 지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
며 “관객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창작 뮤지
컬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20~30대 덕후들, 이들이 형성한 문화=
뮤지컬이 산업화된 지 불과 15년 만
에 3000억 규모로 성장한 것은 충성
도 높은 팬들 덕분이다. 박병성 편집
장은 “관광객이나 노인들이 주 소비자
층인 미국, 영국과는 달리 한국 시장
의 주 소비자층은 20~30대 관객”이라
며 젊은 관객들이 지탱하는 한국 뮤지
컬 산업에 대해 설명했다. 예술경영지
원센터가 2014년 발표한 ‘뮤지컬 실태
조사’에 따르면 남성보다 여성의 관람
횟수가 높았고, 연령별 관람 비율에서
20~30대가 기타 연령대보다 높은 것
으로 나타났다.
한국 뮤지컬 관람 문화의 가장 큰 특
징은 한 극을 여러 번 보는 ‘회전문 관
객’이 많다는 점이다. 「마마 돈 크라
이」의 지난해 관객 중 79%가 재관람
자, 즉 회전문 관객이기도 했다. 트위
터 닉네임 ‘굴러가는 곰’ 씨는 한 뮤
지컬을 여러 번 보는 이유로 “원 캐스
트-언더스터디* 체제로 가는 대신 멀
티 캐스팅을 선택한 한국 뮤지컬계에
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배우들
의 조합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배우의
연기 스타일과 페어별 호흡을 보기 위
해 회전문을 도는 것”이라고 덧붙였
다.「마마 돈 크라이」의 회전문 관객
이었던 윤예지 씨는 “극에 상상의 여
지를 남겨둬 여러 번 보면서 그 틈을
채워 나가는 것이 매력”이라며 “배우
에 따라 해석도 다르기 때문에 그 다
른 점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고 밝혔다.
이른바 ‘덕질’을 하는 젊은 관객들
이 많은 산업 구조는 ‘시체관극’이라
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시체관극
이란 공연을 볼 때 시체처럼 꼼짝 않
고 조용히 관람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
다. 정현수 씨는 “런던에서는 극을 보
는 도중에 뭘 먹거나 맥주를 마신 채
공연을 보러 들어가기도 했다”고 한국
과는 다른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는 관
광객 위주로 발달한 미국이나 영국의
뮤지컬 산업과는 달리 고정된 팬층이
주 관람객이 되다보니 생겨난 문화다.
윤예지 씨는 “덕후일수록 관극 경험도
많고 그 시간에 집중하고 싶어해 ‘관
크’*에 더 예민한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공연이 끝난 후 커뮤니
티나 SNS에 그날의 관크에 대해 불만
을 토로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기
도 한다.
◇회전문 관객, 양날의 검=고정된 관객
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편으론 더 넓
은 관객층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유리 평론가는 “인구
수도 적고 일부 20~30대 관객 말고는
공연을 잘 보지 않아 내수 시장의 한계
가 명확하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제한
된 소비자층에 비해 제작되는 작품 수
는 과도하게 많다. 예컨대 브로드웨이
에서 한 해에 올라가는 공연이 30편정
도인 반면 한국은 서울에서만 200편
정도가 올라간다. 이른바 과잉공급 상
태인 것이다. 박병성 편집장은 “한정된
관객층에 과잉공급을 하다 보니 스타
를 내세워 팬들을 모으려는 경향이 강
해졌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제작사
들은 스타들의 몸값을 감당하느라 티
켓 가격을 높이거나 VIP 좌석을 늘리
게 되고, 자연스레 관객층은 이를 기꺼
이 감당할 소수의 팬덤으로 한정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티켓이 비싸져 일반인 관람객들의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진데 반해, 스타
마케팅에 제작비를 치중하느라 작품의
질을 높이고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관
객층의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은 상대
적으로 부족하다. 윤예지 씨는 “제작자
들이 홍보를 굳이 하지 않아도 비싼 티
켓 값을 지불하고 봐주는 고정 관객층
을 믿고 안전한 길로만 간다”며 “사람
들이 뮤지컬에 갖는 선입견을 넘어서
는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올리고 홍보
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더욱 넓고 깊은 뮤지컬계를 위해=넓은
관객층을 확보해 한국 뮤지컬계가 발
전하려면 우선 스타 캐스팅에만 의존
하는 제작자들의 자성이 필요하다. 최
연수 씨는 “캐스팅에 제작비를 쏟는 대
신 완성도를 보완하고 새로운 소재를
발굴한다면 공연의 질도 높이고 새로
운 관객을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이라
고 강조했다. 원종원 평론가는 “프리뷰
(pre-view) 공연 기간을 대폭 늘려 관
객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후 한층 완성도 있는 공연을 올려야 한
다”고 말했다.
창작 뮤지컬을 육성하는 것도 방법
이다. 박병성 편집장은 “한국에서 관
객층을 확대하는 것이 어렵다면 해외
로 눈을 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창
작 뮤지컬의 저작권은 국내 창작자들
에게 있기 때문에 해외로의 수출을 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현수 씨는 “음
악도 좋고 참신한 스토리를 가진 창작
뮤지컬이 계속 생겨난다면 해외에서
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창작 역량
을 길러야 한다. 이유리 평론가는 “실
력 있는 전문 작곡가와 연출가를 육성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역설했다. *언더스터디: 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타로 투입되는 배우*관크: ‘관객 크리티컬(critical)’의 준말
로 공연 중 다른 관객에 의한 관람 방해
2016년 9월 12일 월요일 9대학신문 기획
공연이 좋아서 아
나운서를 그만두고
뮤지컬계에 뛰어든
고은령 대표는 화
려한 뮤지컬 이면
에 있는 소외계층
에게 주목했다. 팟
캐스트가 뜨기 시
작한 2012년, 그는
공연계 청년들이
설 자리가 부족하
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 대표는 “자리가 없는 그들에게 작품
을 발표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우리 방송의 제목 ‘자리
주삼’이 탄생했다”고 회상했다.
라디오 방송인 자리주삼의 메인 코너는 귀로 듣는 뮤지컬
인 ‘오디오 뮤지컬’이다. 이밖에 오디오 뮤지컬 출연 배우들
과의 토크쇼 ‘잡수다’, 예술계 취업 지망생들을 위한 미니 강
연 ‘조한성의 무엇이든 물어주삼’, 신인들의 노래를 모아 담
아 일종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스신소’(스튜디오 뮤지컬이
신인을 소개합니다) 등이 자리주삼의 주요 코너들이다. 고
대표는 “방송을 듣고 신인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우리 쪽으
로 연락처를 묻는 경우도 있었다”고 뿌듯하게 설명했다.
자리 없는 신인 배우, 티켓값이 비싸 좋은 공연을 보지 못
하는 관객을 위해 시작한 스튜디오 뮤지컬은 시각장애인에
게까지 손길을 넓혔다. 이들을 위해 스튜디오 뮤지컬은 화
려한 볼거리 없이 귀로 듣기만 해도 무대가 생생히 떠오르
도록 극을 각색한다. 고 대표는 “장면 해설이 너무 길어서
지루하진 않은지, 어떤 음향이 들어가야 장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등을 고민한다”고 설명하며 “현장성이 없는
대신 다양한 효과음을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장애물 없이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
를 지향하는 스튜디오 뮤지컬은 또 다시 경계를 넓혀가려고
한다. 고 대표는 “지금은 시각장애인에 집중하고 있지만 좀
더 관심을 확장해서 소외계층 누구나, 마음의 장벽을 가진
사람마저도 뮤지컬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서경대 뮤지컬학과 학생들의 공연은 아마추어
공연이지만 공연을 올릴 때마다 뮤지컬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특히 지난 학기의 「스프
링 어웨이크닝」은 500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성
황리에 공연됐다. 기획팀 오혜리 씨(서경대 뮤지
컬학과·14)는 “공연이 점점 인기가 많아지면서
뮤지컬을 즐기는 일반인들도 많이 찾아와서 보시
는 편”이라며 뿌듯해했다.
올해로 개설된 지 5년째인 서경대 뮤지컬학과
는 탄탄한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매 학기 정기공
연을 올리고 있다. 뮤지컬학과의 학생들은 6개
의 공연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배우와 스
태프가 분리된 전문 프로덕션과 달리, 이곳엔 ‘올
배우 올스탭’ 제도가 있다. 연출부 원미래 씨(13)
는 “연출, 무대감독, 무대디자인 등 총 10개의 파
트로 나뉘고, 각자 원하는 파트에 지원하게 된
다”며 “다른 파트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공연마
다 파트 변동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통
해 학생들은 공연제작에 관여된 모든 과정을 경
험해볼 기회를 얻게 된다. 음향팀 김연준 씨(14)
는 “스태프 일을 배우면서 그들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고 기술도 익힐 수 있는 기회”
라고 의의를 밝혔다.
프리 프로덕션은 평균 14주 정도의 연습 기
간을 가진다. 이 기간 동안은 아침 9시부터 저
녁 11시까지 꽉 채워진 일정표에 따라 진행된
다. 연출부 김병훈 씨(11)는 “공연을 통해 뮤
지컬 배우가 갖춰야 할 노래, 연기, 춤 각 영역
별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며 “교수님들
과 함께 새벽 3~4시까지 땀 흘리며 연습한다”
고 설명했다. 그는 “공연은 함께 뮤지컬계를
누빌 미래의 동료를 만나고 인연을 두텁게 쌓
아가는 과정”이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뮤지컬 산업과 팬들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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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컬쳐’ 한승원 대표 “작품이 주는 메시지의 힘을 믿다”
한국 뮤지컬 산업은 꾸준히 관객을 모으며 한 해 200편 이상의 공연이 올라가고, 3천억 규모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뮤지컬은 소
수의 ‘덕후’들만이 즐기는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다. 뮤지컬은 어렵거나 비싸다는, 혹은 과장된 연기와 소재가 한정돼 있다는 높은 진입장벽 안에 둘러싸여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한국 뮤지컬 산업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그 매력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김지수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조수지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이문영 기자 [email protected] 삽화: 이은희 기자 [email protected]
서경대 뮤지컬학과 “목표는 한국 뮤지컬의 주역”
‘스튜디오 뮤지컬’ 고은령 대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을 위해”
사진제공: 서경대 뮤지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