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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의 정치경제학 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vol.5 향후 엔화의 방향은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경제적 으로 엔화는 절대 ‘안전통화’가 아니다. 오히려, 엔화는 낮은 성 장성과 높은 정부 부채 비율로 ‘위험한’ 통화다. 따라서, 경제적 으로 엔화 뱡향성을 예상하려는 시도는 종종 허사가 된다. 방법 이 틀렸기 때문이다. 이번 엔화 약세는 아베노믹스로부터 시작됐고, 아베 정권과 생 명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번 도쿄 도지사 선거 이 후, 엔화는 다시 약세를 보일 것이다. The Call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2 1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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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의 정치경제학 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vol.5

    향후 엔화의 방향은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경제적

    으로 엔화는 절대 ‘안전통화’가 아니다. 오히려, 엔화는 낮은 성

    장성과 높은 정부 부채 비율로 ‘위험한’ 통화다. 따라서, 경제적

    으로 엔화 뱡향성을 예상하려는 시도는 종종 허사가 된다. 방법

    이 틀렸기 때문이다.

    이번 엔화 약세는 아베노믹스로부터 시작됐고, 아베 정권과 생

    명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번 도쿄 도지사 선거 이 후, 엔화는

    다시 약세를 보일 것이다.

    The Call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2

    14. 2. 10

  • The Issueㅣ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2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선임연구원 권규백 02.3779-8885 l [email protected]

    책임연구원 오동석 02.3779-8987 l [email protected]

    무엇이 엔화의 방향을 결정하는가

    통화(Currency)란 결국 약속된 또는 허가된 권리다. 이것은 한 국가나 경제권역 내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상징한다. 따라서, 특정 경제권의 통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경제권 내에서 물건이나 용역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상대방이 응할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권리’라기 보다는 ‘요구할 수 있는 자유’라고 해야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통화

    의 가치는 그것이 통용되는 경제권의 가치와 직결된다. 그 국가 또는 경제권역에 가치 있는 물건

    이나 서비스가 많이 존재한다면 다른 지역에서 그 통화를 점점 더 원하게 되고, 결국 통화의 가

    치는 올라간다. 그리고 우리는 시장에서 평가하는 통화들의 가치 비교치를 환율(換率)이라고 한

    다.

    흔히 엔화는 안전통화로 불린다. ‘금융 시장 특히, 증시가 불안정해질 경우 엔화는 강세를 보인다’

    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상적인 시장 반응이다. 그래서, 전날 밤 글로벌 주식 지수들

    이 크게 하락하면, 그 영향으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하락했다는 아침 시황이 주를 이룬다. 그

    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엔화를 신뢰한다는 말인데, 일본의 무엇이 시장 참가자들에게 믿음과 안

    정감을 주는 것일까?

    [그림1]은 일본의 성장성 보여준다. 가장 최근 발표된 지난 해 성장률은 고무적이다. 1분기

    4.5%, 2분기 3.6% 그리고 3분기 1.1%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4분기를 감안해도 연간 성장률이

    3%에 육박한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GDP는 2.8% 증가했다. 확실히 일본의 최근 성장세는 주목

    할 만하다. 하지만, 긴 시계열의 성장 데이터는 약간 실망스럽다. [그림1]의 검은 선 추이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난 90년 대 초반 이후 일본은 평균 1% 전후의 성장에 머물러 있기만 했다. 금융 위

    기 때는 -5%까지 하락하는 일본답지 않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GDP 증가율의 표준

    편차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빼고는, 성장에서 ‘안심이 되는 이유’를 찾긴 어려워 보인다. 다른

    경제 지표도 살펴보자.

    [그림1] 일본 GDP 성장률 [그림2] 일본의 실업률과 소비자물가상승률

    자료: BOJ,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자료: Bloomberg,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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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률(좌) 소비자물가상승률(우)

    mailto:[email protected]

  •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ㅣ The Issu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3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이미 유명하다. 대부분의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약간의 물가상승은 정상

    적인 시그널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것이 과할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과도한 물가 상승은 소

    비를 위축시키고, 화폐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다. 그런데, 물가에 있어 가장 위험한 것은

    디플레이션 즉, 상품과 서비스 가격의 추세적인 하락이다. 미래에 물가 하락이 확실하다면 생산

    은 위축된다. 누구도 가격이 하락할 상품을 생산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도 줄어든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 낮은 가격에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왜 급하게 소비를 서두

    르겠는가? 저축률은 올라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체 경제는 쇠락해진다. 이런 디플레이션이 일

    본 경제의 특징으로 자리잡은 것은 한참 전이다. 특히, 1999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월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금융 위기 기간에도 마찬가지다. 최

    근 크게 반등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과거의 물가하락을 모두 상쇄할 수 없다. 게다가, 디플

    레이션 기간에 엔화가 강세를 보였다는 사실, 그리고 최근의 약세 전환은 경기 펀더멘털이 좋아

    서 엔화가 안전통화라는 논리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소비가 위축되는 국가의 통화가 안전통화

    라니. 고용지표는 그나마 낫다. 공식 실업률이 3%를 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는 높게 보이지만,

    3.7%라는 지난해 12월 일본의 실업률은 1998년 이후 가장 낮은 레벨이다. 그리고 추세만보면

    곧 그 보다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것도 앞서 본 디플레이션 문제와 같이 경기가 좋

    아지는 단계에 엔화가 약해지는 이상한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만 한다. 통화란 것이 경

    제 펀더멘털을 반영하고 그래서 엔화가 안전통화로 등극한 것은 일본 경제가 튼튼하기 때문일 것

    이라는 애초의 논리적 추정에 금이 가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통화란 것이 상품과 서비스의 구매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금융적인 요소’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어떨까? 소위 엔캐리 트레이딩말이다. 확실히 미일간 금리차와 달러/엔 환율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림3] 1977년 이전에는 역의 상관관계를 보였지만, 그 이후의 추

    이는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확대되면 일본 내 자금이 더 높은 수익률

    을 찾아 미국국채를 매수하고 그 과정에서 FX 시장에서는 엔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사려는 수요

    가 증가한다. 그래서 엔화는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인다. [그림3]과 함께 보면 이 엔캐리 트레이딩

    로직은 완벽하게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분석의 가장 큰 맹점은 결국 현상

    설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엔화 약세가 미일 금리차 확대 때문이라는 것에는 왜 미일 금리차

    가 확대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엔화가 글로벌 금융 시장 더 크게는 통화

    정책 트렌드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확인 시켜줄 뿐, 미래 엔화 방향성 전망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림3] 미국과 일본 국채 금리차와 달러/엔 환율 추이

    자료: Bloomberg,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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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D/JPY) (%)

    미국10y-일본10y 스프레드(좌) 달러/엔 환율(우)

    1985.9.22

    플라자합의

    1995.4.18

    역플라자합의

  • The Issueㅣ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4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더 혼란스럽게 하는 분석이나 현상설명에 불과하여 예측에 도움이 되지 않

    는 설명 말고 확실하게 엔화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바

    로 ‘정치’다. 1985년 9월 22일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G5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은 달러의

    평가절하를 결정했다. 당연히 당시 무역 수지 흑자폭을 키워가던 일본과 독일의 양보가 강요되었

    다. 엔화는 달러 대비 급속히 강해졌고, 합의 당시 200엔 대였던 달러/엔 환율은 1년이 지난 후

    100엔 대 중반으로 낮아졌다. 무려 24%에 가까운 절상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달러 약세로

    ‘쌍둥이 적자’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의 예상이 빗나가고 엔화 강세가 너무 지나치자,

    도쿄 외환 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이 80엔을 하향 돌파한 1995년 4월 18일을 기점으로 G7은 강

    달러 정책으로 선회한다. 그 때부터 엔화는 98년까지 138엔으로 약해진다. [그림3] 이 보다 더

    분명한 원인 분석이 있을까?

    물론, 정치가 엔화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 정치적 합의 또한 경제적 이

    유에서 발원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설픈 ‘안전통화 개념’이나 피상적인 엔캐리 트레이딩 분

    석보다 정치경제학적 분석이 훨씬 안정적이고 신뢰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금은

    엔화에게 제2의 정치적 계절이다.

    이번 엔화 약세의 시작 - 아베 노믹스

    아베(Abe Shinzo, 1954~)정권의 경제 정책은 ‘3개의 화살’로 상징된다. 첫째는 ‘대담한’ 금융완

    화. 둘째는 ‘기동적’인 재정 운용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민간투자를 끌어내 성장으로 이끄는 전략

    이다. 이번 경제 정책이 아베 노믹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주목을 끄는 이유는 2012년 12

    월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294석을 차지, 단독 과반을 형성할 정도로 높은 지지를 받

    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BOJ의 적극적인 지원 사격 때문이다.

    2013년 3월 21일 취임식에서 구로다 신임 일본은행 총재는 ‘2년 이내 2% 인플레이션’이라는 명

    쾌한 목표를 제시했다. 이미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1월, 2014년 초부터 매달 13조엔의 자산을

    무기한 매입할 것을 결정했지만, 구로다 총재는 한 발 더 나아가 명확한 인플레이션율 상정과 함

    께 매입 자산도 단기 국채에서 중장기로 확대하고, REIT와 같은 위험자산도 고려할 것을 표명하

    고 있다. [그림4] 그 동안 일본 중앙은행의 관행을 꿰뚫는 완벽한 화살이다. 재정지출이라는 두

    번째 화살은 이미 사용하고 있으니, 중장기적인 목표인 성장이라는 세 번째 화살만 날리면 아베

    노믹스는 완성되는 것이다.

    사실 ‘3개의 화살’ 즉, 미쓰야(三矢)는 일본 정치역사에서 낯선 단어가 아니다. 1965년 당시 방위

    청 장관이었던 고이즈미 준야에 대한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나온 미쓰야(三矢) 연구라는 단어

    는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왜냐하면, 이 계획은 소위 ‘통합방위도상연구회’라는 연구회

    에서 논의 된 전략으로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핵폭탄을 떨어뜨리고, 주일 미군과 함께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하여 재주둔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남한의 공조를 강조하여 미쓰야 즉, 3개의 화살로 명명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는 명백한 일본

    ‘평화 헌법 9조1’ 위반이다. 이 스캔들로 방위청 장관 고이즈미 준야는 물러나고 당시 수상이었던

    사토 에이사쿠(Sato Eisaku, 1901~1975)는 3년 후,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반입하지도 않

    는다’는 비핵 3원칙을 선언하게 된다.

    1 일본국 헌법 제 2장 9조

    1.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 또한,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치 않는다.

  •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ㅣ The Issu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5

    [그림4] 정치적 이벤트와 일본 엔과 니케이 225 추이

    자료: Bloomberg,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패전 후 일본을 지배하는 커다란 두 기조는 평화헌법과 미일안전보장조약2이었다. 2차 대전에서

    가장 극렬한 저항을 보였던 일본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급격히 달라

    졌다. 종전 직후, 미국은 헌법개정안 초안을 직접 작성해서 일본 지도부에 넘길 만큼 일본에서 영

    원히 무력 사용 가능성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동북아에서 소련의 견제가 필요해짐에 따라 일

    본과 안정보장조약을 맺고 미군을 주둔시킨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미국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는 핑계로 ‘자위대’를 창설하고, 키워나갔다. 전쟁을 부정하는 헌법과 전쟁을 준비하는 자위대. 이

    모순이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 1946~1947)에서 용융되어 통상국가론 즉, 안보를 미국에 의존

    하는 대신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국가 전략이 탄생한다. 이른바 ‘요시다 노선’이다.

    일본 보수의 역사는 이 두 모순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일본을 미일안전보장조약 쪽으로 밀어 부

    치려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그리고 미쓰야 전략은 그 노력의 중간 목표다. 미국과 공조를 통한 한

    반도로의 재진입(Re-Entry). 이는 지난 태평양 전쟁을 정당화 시켜주는 동시에 일본 외교와 군

    대의 독자성 회복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본은 끊임없이 한반도의 불안정을 강조하고, 과거에는

    소련 그리고 지금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최전선을 자처한다. 미국도 이를 철저히 이용한다. 미일

    안보조약자체가 그 목적을 위한 것이다. 과거 애치슨 선언에는 일본을 동북아의 실질적인 전선

    (戰線)으로 상정하는 미국의 의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제 미국이 아시아로 돌아오려고(Pivot

    to Asia) 하는 이때, 일본은 다시 한번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사실 아베 총리에게 미쓰야(三矢)는 너무도 친숙한 개념이다. 1960년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을

    끌어내고 자위대 문제에서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킨 신(新)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한 기시 노부스케

    가 그의 외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 생활 내내, 공공연히 평화헌법을 ‘패전국의 반성문’

    이라 부르며 적극적으로 개정을 시도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된 사토 에이사쿠가 그의 작은 외할

    아버지다. 그러니까, 기시 노부스케와 사토 에이사쿠는 친형제인 것이다. 거물급 두 총리의 외손

    자이자, 역대 최연소 수상에 오른 아베는 일본 보수계의 아이돌이다. 그 아베가 경제 정책으로 화

    살을 들고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2 일본과 미국 간의 안전 보장 조약(Security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으로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함께 체결되었다. 미군의 일본 주둔이 주요 내용이다. 1960년 소위 신(新)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효력을 상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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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USD/JPY) 달러/엔 환율(좌) 니케이225(우)

    2012.11.16

    중의원해산

    2012.12.16

    자민당 대승

    2012.01.21

    BOJ 2% 인플레이션률 목표제시

  • The Issueㅣ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6

    사실상 이번 아베 노믹스도 미국의 묵인 또는 도움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하다. 엔화의 약세가 필

    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확실히 모종의 합의가 있었음을 추측케 한다. 소극적인

    개입에 불과한 우리 통화 당국의 외환 스무딩에는 까칠하게 굴면서 일본의 엔화 약세는 자연스러

    운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IMF에서도 BIS 내부에서도 역시 관찰된다. 경제 부문에서도

    신(新)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된 듯 하다.

    [그림5] 극우의 재집권과 미국의 아시아 귀환(Pivot to Asia)

    자료: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엔화 약세 지속의 시금석 – 2/9 도쿄 도지사 선거

    이번 엔화 약세의 시작이 아베 정권의 등장과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2012

    년 말부터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이래서는 엔화 약세의 상당부분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도쿄 도지사 선거가 중요하다.

    지난해 12월 19일,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도쿄도지사는 2012년 선거직전 5천만엔을 받았다

    는 의혹이 커짐에 따라 기자회견을 통해 도지사직을 사퇴한다고 발표한다. 이에 일본의 공직선거

    법(도지사 사퇴 통지 후 50일 이내에 선거 실시 의무 규정)에 따라, 2014년 2월 9일 새로운 도

    쿄도지사를 뽑는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 자료 발간 시점으로는 바로 전일이다)

    애초에는 여당인 자민∙공명당이 지지하는 전 후생노동상인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후보가 이

    노세3 지사에 이어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점쳐졌었다. 하지만, 1998년에 정계 은퇴

    를 선언했던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 護煕) 전 총리가 탈원전을 기치로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

    하고, 민주당 출신의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뿐만 아니라 자민당 총수로써 2001년부터 2006

    년까지 총리를 지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호소카와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선거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3 이시하라 도지사의 총선출마로 2012년 실시된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이노세 나오키는 총433만 표를 얻어 2위 후보를 무려 300만표 이상 차이로 따돌렸음. 일본 선거 사상 개인이 400만표 이상을 획득한 것은 이 때가 최초였음

  •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ㅣ The Issu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7

    지난 1월 산게이 신문 계열인 ZAKZAK가 실시한 설문조사는 마스조에가 40%, 호소카와 16%,

    우쓰노미야 15%, 다모가미가 6%정도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 간부들과 베테랑

    정치부 기자들이 한 분석에 따르면 마스조에는 230만표, 호소카와는 250만표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되어 호소카와 후보의 우세가 점쳐진다. 이밖에 투표율이 55%에서 높아질수록 호소카와 후

    보가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두 차례의 도쿄도지사 선거 투표율이 각각 58%, 62%였는데,

    이번 선거의 관심도(‘투표하러 반드시 간다’ + ‘아마 간다’ 라는 응답이 93%에 달하고 있음)를 고

    려해 볼 때 투표율은 62%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표1] 2/9 도쿄 도지사 주요 후보 양력

    사진 이름 소속정당 및 후원자 과거 경력 및 주요 공약 내용

    마스조에 요이치

    (舛添要一) 자민, 공명당 지지

    - 아베 신조 1기 내각때 후생노동상을 역임. 현재

    집권당인 자민·공명의 지지를 받고 있음. 현재 여

    론 조사에 따르면 당선이 유력하다고 알려짐

    호소카와 모리히로

    (細川 護煕)

    고이즈미, 간 나오토,

    노다 전 총리 지지

    민주당 지지

    - 1993년 비자민당 출신으로 최초로 총리를 역임

    (1955년 이후 정권교체 실현) . 다만 1994년 정치

    자금 문제로 연립정부 붕괴. 1998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2014년 반원전을 기치로 도쿄 도지사

    선거에 출마

    우쓰노미야 겐지

    (宇都宮健兒) 사민당, 공산당 지지

    - 전 일본 변호사연합회장, 험한 시위 반대, 2007

    년 일본 내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반빈곤네트워

    크'대표도 역임

    다모가미 도시오

    (田母神 俊雄)

    - 항공자위대 제 29대 항공 막료장 출신으로 군사

    평론가겸 우익인사로 평가. 2008년 10월 "일본은

    침략국가였는가?"라는 논문을 작성

    자료: 언론보도, 위키피디아,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그림6] 여론 조사에서는 마스조에 후보가 유리 [그림7] 실제로는 호소카와 후보가 유리할 수도…

    자료: 언론보도,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자료: 언론보도,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마스조에, 40

    호소카와, 16

    우쓰노미야,

    15

    다모가미, 6 우쓰노미야,

    10.1

    다모가미,

    6.7

    마스조에,

    38.7

    호소카와,

    42.1

  • The Issueㅣ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8

    아베 VS 고이즈미 그리고 조슈 VS 사쓰마

    지난 1년간 아베 정부는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고, 어쩌면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정권과 같이

    (집권기간은 1,980일로 2차 대전 후 세 번째로 장기간의 집권을 이뤘음) 장기집권도 가능해보인

    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베정부의 정치적 성공에 있어 장애물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말 아

    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A급 전범들 합사) 참배 후, 주변국들의 반발이 확대되고 있고, 한 여론

    조사에서는 일본 국민들의 47%가 “향후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

    다” 라고 답변했다. 또한, 원전 재 가동에 대해서는 60.2%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서는

    53.8%의 국민이 반대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듯, 지난 달 19일에 진행된 오키나와 현

    나고시장 선거에서 자민당이 지지하던 스에마쓰 분신 후보(오키나와 후텐마 공군기지 이전 찬

    성)가 현직시장인 이나미네 스스무(후텐마 공군기지 이전 반대)에 패배하며 아베 정부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9일 열리는 도쿄도지사 선거가 진행된다. 후보는 마스조에와 호소카와이지만 실제

    로는 아베와 고이즈미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같은 자민당의 유력 인사고, 게다가 아베

    는 과거 고이즈미 내각에서 내각관방상(3차 내각, 1차 내각에서는 내각관방 부장관을 엮임)에 이

    어 후임총리로 지명되기도 했었는데, 왜 이런 대립을 보이는 것일까?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임

    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전 총리는 탈 원전이라는 명분만으로 호소카와 후보를 차기 도쿄도지사

    로 지지하고 있다. 두 총리의 밀접한 과거 관계를 감안하면 고이즈미 전 총리의 행보를 노욕(老

    慾)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아베 내각의 일원인 아들 고이즈미도 자당 후보를 비난

    하고 있고, 일부 자민당 의원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것은 고이즈미라는 특이한 정치인 단독의

    일탈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이즈미와 아베간의 대치에 역사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면 흥미로운 관계를 찾아낼 수 있다. 메이

    지 유신 당시 일본의 정치, 군사적 혁신을 주도한 것은 조슈와 사쓰마번이었다. 이 중 아베 총리

    의 지역구는 야마구치 현으로 과거 죠슈번의 근거지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지역구는 가나가와

    현으로 도쿄 근방에 위치하고 있어 사쓰마와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고이즈미의 아버지인 고이즈

    미 준야(小泉純也)의 출생지는 현재의 가고시마 현으로 과거 사쓰마 번 지역이다. [그림8] (고이

    즈미 준야는 가고시마 현에서 중의원에 당선이 되었고, 장인인 고이즈미 마타지로가 사망한 이후

    마타지로의 지역구를 이어받았음.)

    현재 죠슈를 대표하는 자민당 내의 인물은 아베 신조이고, 사쓰마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는 최근 아베의 독주로 생겨난 일본 보수

    내의 갈등이 죠슈와 사쓰마라는 전통적인 경쟁세력 간의 대결로 표면화 된 것으로 보인다.

  •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ㅣ The Issu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9

    [그림8] 아베 신조의 지역구(야마구치현), 고이즈미 준야(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버지) 출생지 및 지역구(가고시마)

    자료: Googl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그림9] 삿쵸동맹에서 죠슈번(야마구치)와 사쓰마(가고시마)의 현 위치

    자료: 현대일본을 찾아서,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 The Issueㅣ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10

    [표2] 최근 일본 주요 선거 결과

    선거일정 행정구역 당선자 특이사항

    2014.01.19 오키나와 현

    나고시장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재선, 후텐마 공군기지 이전 반대

    (자민당 후보를 꺽고 재선에 성공)

    2013.11.10 히로시마 현 유자키 히데히코(湯崎英彦) 재선/자민, 민주, 공명 공천

    2013.10.27 미야기 현 무라이 요시히로(村井嘉浩) 3선

    2013.09.08 이바라키 현 하시모토 아키라(橋本昌) 6선

    2013.07.21 호고 현 이도 토시조(井戸敏三) 4선, 공명 사민 추천

    2013.06.16 시즈오카 현 가와가츠 헤이타(川勝平太) 재선

    2013.03.21 치바 현 모리타 켄사쿠(森田健作) 재선

    2013.03.17 아키타 현 사타케 타카히사(佐竹敬久) 재선, 공명 추천

    2013.01.27 기후 현 후루타 하지메(古田肇) 3선, 자민 민주, 공명 추천

    2013.01.10 야마가타 현 요시무라 미에코(吉村美栄子) 재선

    자료: 언론보도, 한국투자증권 “2월 9일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재인용”,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과 삿초동맹(薩長同盟))

    일본의 개항은 미국 페리제독에 의해 강제적으로 실행되었다. 기존 막부체제에서는 나가사키에

    한정되어 네덜란드와의 제한적인 무역만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미국에 의한 강제적인 개항이 이

    루어지자 일본 내 젊은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존왕양이4(尊王攘夷)사상이 퍼지게 되었고, 그 존

    왕양이의 주축이 조슈, 사쓰마, 토사 번이었다. 특히 요시다 쇼인과 쇼카촌 인물(기도 다카요시,

    다카스기 신사구, 이토 히로부미 등이 쇼카촌 출신)들의 주도로 조슈번은 존왕양이 운동의 중심

    이 됐고, 1963년 5월 시모노세키(下關) 해협을 통과하는 미국∙프랑스∙네덜란드의 상선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등 양의(攘夷)를 직접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슈번을 제외한 다른

    번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상선을 공격한 행동이 외국 정부의 분노를 사 결국 영국을 중심으로 한

    함대에 조슈번이 공격을 받는다. 시모노세키 해협에서 서양함대로부터 포격을 받고, 이케다야 사

    건5(池田屋)으로 타격을 입자 일부 조슈번 무사들이 중심으로 천황을 옹립하기 위해 교토로 쳐

    들어가는 무리수를 두지만, 아이즈와 사쓰마 번의 반격으로 천황옹립에 실패한다. 이 사건 이후

    아이즈와 사쓰마는 조슈의 원수가 된다.

    하지만, 격동기 관계는 쉽게 변하는 법이다. 도쿠가와 막부와 천황 측에서는 조슈번의 이러한 행

    동들을 반역이라 규정하고, 죠슈 정벌을 결정했다. 하지만 죠슈 측이 교토를 침공한 지도자 및

    가신들을 처벌하며 당장의 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결국 다카스기 신사쿠의 쿠데타로 존왕양이

    세력이 조슈번 완전히 장악함에 따라 막부는 죠슈에 대한 2차 정벌을 결정했다. 하지만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로 원수지간이었던 조슈 번과 사쓰마 번간에 삿초동맹(薩長同盟) 동맹이 성립되었고

    2차 죠슈 정벌은 실패로 끝난다.

    사쓰마 번의 개입으로 죠슈번 토벌이 실패하고, 정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쇼군 도

    쿠가와 요시노부는 4후 회의를 통해 반전을 꾀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이 회의를 통해 사쓰마번의

    번주였던 시마즈 하사미쓰는 막부 토벌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실제 대규모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고, 고토 쇼지로와 사카모토 료마가 제안한 대정봉환(大政奉還)6의 의견서를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받아들여 1867년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렸다. 이후 도바(鳥羽)∙후시미

    (伏見) 전투와 무진전쟁(戊辰戰爭)에서 샷초 동맹의 메이지 신 정부군이 친 막부 계열에 승리를

    거두며 메이지 유신이 완결된다.

    4 천황의 고대적 권위를 복원하고, 일본과 통상을 기도하려는 외세를 배격하고자 했던 봉건적 배외사상

  •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ㅣ The Issu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11

    [그림10] 유신 삼걸(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와 삿쵸동맹(薩長同盟)을 이끈 사카모토 료마

    기도 다카요시 or 가츠라 고고로우

    (조슈번, 현 야마구치현)

    사이고 다카모리

    (사쓰마번, 현 가고시마현)

    오쿠보 도시미치

    (사쓰마번, 현 가고시마현)

    사카모토 료마

    (토사번, 현 고치현)

    자료: Googl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메이지 유신 이후 정계, 군부, 관료는 죠슈번, 사츠마 번 사람들이 주도

    메이지 정부 초기는 유신삼걸(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움

    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의 막번 체제의 해체, 농지개혁등 여러 개혁정책들을 실시하기 시

    작했다. 다만 삼인 모두 메이지 유신 후 10년 정도만에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입헌이나, 헌법제

    도는 확립하지는 못했다.

    이들 1세대를 이어 2세대인 이토 히로부미, 오쿠마 시게노부, 구로다 기요타카등이 중심이 되어

    입헌, 헌법제도를 만들었고, 초대 총리에는 죠슈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취임

    했다. 그리고 2대 총리는 사쓰마파의 구로다 기요타카로 결정되었다. 군부에서는 죠슈의 기병대

    (奇兵隊)를 이끌던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일본 육군을 장악한 가운데, 해군은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생인 사이고 쓰구미치가 장악하여 (일본 해군 = 사쓰마)라는 공식을 만들어 냈다.(참고로 러

    ·일 전쟁때의 해군제독인 도고 헤이하치로도 사쓰마 출신,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3대 총리였음)

    이밖에 메이지 유신후 1차 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 총 18명의 총리가 배출되었는데, 이 중

    16명이 죠슈와 사쓰마 출신이었다. 그리고 각료의 46%도 이들 번의 출신으로 구성되며 이들 번

    은 정부, 군부,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19대 총리였던 하라 다카시가 총리자리에 지명된 이후 두 번벌외 다른 지역 출신들도 요직에 들

    어갈 수 있었다. 또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정의 공직자 추방령을 통해서 기존의 정치인들의 변화

    도 이들 번의 영향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후에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등이

    총리에 취임하는 등 본질적으로 두 지역의 인물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특히 2차 대전

    후 2,798일이나 총리자리를 지켜온 사토 에이사쿠는 아베와 마찬가지로 야마구치 현 출신이고,

    그 형인 기시 노부스케도 총리를 역임했다.

    5 1864년 7월 교토에 있던 이케다야에서 신선조에 의해 죠슈파 존와양이파를 습격해서 살해한 사건

    6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준 사건

  • The Issueㅣ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12

    [그림11] 일본 정계의 죠슈, 사츠마 번 주요 인사들

    이토 히로부미

    (조슈번, 야마구치 현 출신)

    사토 에이사쿠

    (애마구치 현 출신)

    구로다 기요타카

    (사쓰마번, 가고시마 현 출신)

    요시다 시게루

    (오쿠보 도시미츠의 손녀 사위)

    자료: Googl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그림12] 역대 일본 총리 배출 지역(야마구치현 출신 9명이나 됨)

    자료: Google, 우지 도시코 “일본 총리 열전”에서 재인용,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숫자는 총리 취임 순

    각 도도부현에서 배출된 총리의 수

    출산지는 구헌법하의 총리 [(1)이토 히로부미~(31)시데하라 기주로]는

    출생지역 도도부현 신허법하의 의원 내각제에서 총리 [(32)요시다

    시게루~]는 선거구 도도부현으로 계산되었다. 요시다, 가타야마,

    이시바시, 미야자와, 호소카와, 하네다, 하시모토는 출생지와

    선거구 도도부현이 다르다.

    (1)이토 히로부미

    (3)야마가타 아리토모

    (6)가쓰라 다로

    (9)데라우치 마사타케

    (16)다나카 기이치

    (37)기시 노부스케

    (39)사토 에이사쿠

    (57)아베 신조

    (12)가토 도모사부로

    (38)이케다 하야토

    (49)미야자와 기이치

    (15)와카쓰키 레이지로

    (46)다케시타 노보루

    (18)이누카이 쓰요시

    (24)히라누미 기이치로

    (53)하시모토 류타로

    (7)사이온지 긴모치

    (30)히가시쿠니노미야

    (34)아시다 히토시

    (22)하야시 센주로

    (25)아베 노부유키

    (55)모리 요시로

    (40)다나카 가쿠에이

    (10)하라 다카시

    (19)사이토 마고토

    (26)요나이 미쓰마사

    (44)스즈키 젠코

    (28)고이소 구니아키

    (42)후쿠다 다케오

    (45)나카소네 야스히로

    (54)오부치 게이조

    (58)후쿠다 야쓰오

    (51)하타 쓰토무

    (11)다카하시 고레키요

    (23)고노에 후미마로

    (27)도조 히데키

    (35)하토야마 이치로

    (33)가타야마 데쓰

    (56)고이즈미 준이치로

    (61)간 나오토

    (52)무라야마 도미이치

    (17)하마구치 오사치

    (32)요시다 시게루

    (41)미키 다케오

    (43)오히라 마사요시

    (29)스즈키 간타루

    (31)시데하라 기주로

    (14)가토 다카아키

    (48)가이후 도시키

    (47)우노 소스케

    (36)이시바시 단잔

    (21)히로타 고키

    (59)아소 다로

    (5)오쿠마 시게노부

    (13)기요우라 게이고

    (50)호소카와 모리히로

    (2)구로다 기요타카

    (4)마쓰카타 마사요시

    (8)야마모토 곤베에

    (62)노다 요시히코

    (60) 하토야마 유키오

  •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ㅣ The Issu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13

    일본 정치인들 중 많은 수가 지역구를 자손들에게 세습하고 있는 점도 번벌이 유지되는 한 이유

    마이니치 신문이 지난 2012년 12월 열렸던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 입후보한 세습 정

    치인의 숫자를 조사했다7.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자민당 92명, 민주당 26명, 일본 유신회 15명,

    모두의 당 7명등으로 143명이나 되었다. 전체 중의원 480명에 30%에 해당하는 숫자다.

    지난 2009년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3촌 이내를 동일한 선거구에 공천하지 않겠다고 공약

    했다. 하지만 ‘공모’에는 나설 수 있는 것으로 바꿔 세습공천을 제한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나카가와 히데나오 전 간사장, 타케베 츠토무 전 간사장등 모두 아들들

    에게 중의원 의원자리를 세습했음)

    특히 고이즈미 전 총리의 가문은 증조부때부터 80여년간 가나가와현 지역구에서 중의원 의원을

    배출했고, 아베 신조가문 또한 3대가 이어지는 세습 정치 가문이다. 또 지난 2006년 아베 총리

    에 이어 내각총리대신을 지냈고, 아베 2기 정권에서 재무상인 아소 다로 의원도 대표적인 3대

    세습의원 중 하나이다. 국회의원이 세습된다는 의미는 즉. 새로운 세대의 국회의원이 앞 세대의

    가르침 혹은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과거의 번벌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하

    나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표3] 일본의 주요 2세 3세 혹은 4세 정치인들

    정치인 설명 정치인 설명

    1 고이즈미 신지로

    (小泉進次郞)

    외증조부: 고이즈미 마타지로(체신대신)

    조부: 고이즈미 준야(방위상)

    부: 고이즈미 준이치로(총리)

    9 무라카미 세이치로

    (村上誠一郎)

    증조부 무라카미 시로(중의원)

    부 무라카미 신지로(중의원)

    백부 무라카미 코타로(참의원)

    의동생 오카다 카츠야(중의원)

    2 아베 신조

    (安倍晋三)

    조부 기시 노부스케(총리)

    부 아베 신타로우(외무대신)

    대숙부 사토 에이사쿠(총리)

    부친의 사총동생 사토우 마코토(중의원)

    10 나카야마 야스히데

    (中山泰秀)

    조부 나카야마 후쿠장(중의원, 참의원)

    조모 나카야마 마사(후생상)

    부 나카야마 마사키(건설상)

    백부 나카야마 타로(외무상)

    3 아소 다로

    (麻生太郎)

    부: 아소 다카키치(중의원)

    조부 요시다 시게루(총리)

    장인 스즈키 젠코(총리)

    의동생 스즈키 슌이치(중의원)

    11 나카소네 히로후미

    (中曾根弘文) 부 나카소네 야스히로(총리)

    4 하토야마 유키오

    (鳩山由紀)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중의원 의장)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총리)

    부 하토야마 이이치로(외무대신)

    동생 하토야마 쿠니오(중의원)

    12 오자와 이치로

    (小澤一郞) 부 오자와 사에키(운수대신)

    5 오부치 유코

    (小渕優子)

    조부 오부치 코헤이(중의원)

    부 오부치 케이조(총리) 13

    모리 에이스케

    (森英介)

    조부 모리 노부테루(중의원)

    부 모리 요시히데(중의원)

    첫번째 백부 모리 기요시(총무장관)

    두번째 백부 모리 사토루(중의원)

    6 고노 타로

    (河野太郎)

    조부 고노 이치로(놈림 수산)

    부 코노요헤(외무대신, 자민당 총재)

    대숙부 고노 켄조우(참의원)

    14 후나다 하지메

    (船田元)

    조부 후나다 나카(중의원)

    대숙부 후나다 토루지(배상청장)

    대숙부 후지에다 센스케(자치대신)

    부 후나다 켄(참의원, 현지사)

    아내 후나다 메구미(참의원)

    7 후쿠다 야스오

    (福田康夫)

    부 후쿠다 타케오(총리)

    숙부 후쿠다 코오이치(참의원)

    의형 오치통옹(중의원)

    15 히라이 타쿠야 조부 히라이 타로(우정대신)

    부 히라이 타카시(노동대신)

    8 미야자와 요이치

    (宮沢洋一)

    조부 미야자와 유타카(중의원)

    대숙부 오가와 헤이지(중의원)

    부 미야자와 히로시(참의원)

    백부 미야자와 기이치(총리)

    16 마쓰노 요리히사 조부 마쓰노 스루헤이(참의원)

    부 마쓰노 라이조(방위상, 놈린사산 대신)

    자료: 최용규 “일본의 세습적 정치 문화 연구”에서 참고하여 작성,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7 세습 정치인의 범위는 ‘부모 또는 조부모(입양 대상 조부모 포함)가 국회의원이거나 3촌 이내의 친족이 국회의원으로 동일 선거구에서 입후보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 The Issueㅣ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14

    도쿄 도지사 선거 이후 엔화 방향성이 중요하다

    우리는 최근 몇 주간의 엔화 강세의 원인으로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를 주목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지지 표명으로 탈원전을 주장하는 호소카와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엔화 강세

    가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선거가 막바지로 가면서 호소카와 후보의 선전으로 여당인 자민당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가 선거 유세에 직접 뛰어들었고, 당내 2인

    자인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을 비롯해 주요간부와 각료들이 가세했다. 과거 도쿄 선거에서 자민당

    이 얻은 득표율을 생각해 볼 때, 승리가 확실한 지역인데도 자민당이 사력을 다한 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자민당이 텃밭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지 못하는 사실의 반증이다. 그리고 그만큼

    아베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그래서 아베 노믹스가 약화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는 일종의 아베정권에 대한 신임 투표다. 고이즈미측이 승리한다면

    아베 정권은 심각한 타격을 입겠지만, 반대로 선거 결과가 자민당의 완승으로 끝난다면 엔화는

    오늘(10일)부터 다시 약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 동안 타이밍을 보고 있던 BOJ가

    계획된 양적완화 실행을 결정한다면 약세폭은 훨씬 더 클 수 있다.

    [그림13] 과거 이시하라 지사 시절 자민당 득표율 [그림14] 2012년 이와세 나오키 전 지사의 득표율

    자료: 위키피디아,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자료: 위키피디아,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그림15] 최근 엔화/달러 101엔 초반까지 하락 [그림16] 엔화에 대한 비상업 순매도 포지션 줄어들었음

    자료: Bloomberg,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자료: Bloomberg,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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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하라 신타로(3선 평균) 2위 득표 후보 평균

    (%)1999, 2003, 2007년 평균 득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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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이와세

    나오키

    우쓰노미야

    겐지

    시게후미

    무쓰자와

    사사가와

    타카시

    나카마쓰

    요시로

    요시다

    시게노부

    (%) 2012년 도쿄도지사 선거 때 득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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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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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1 13/03 13/05 13/07 13/09 13/11 14/01

    (엔)일본 엔/달러 22MA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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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13/01 13/05 13/09 14/01

    (엔)(천계약) 엔화 비상업포지션(좌)

    엔/달러 환율(우)

  • 엔의 정치경제학(삿초동맹(薩長同盟)의 균열)ㅣ The Issue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15

    아베 정권이 무너지면 엔화는 강해질까?

    엔화 약세는 아베 정권과 생명을 같이 한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퇴진이 엔화 강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베는 엔화의 급격한 약세를 막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림18]은 일본의

    대외 수지 적자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무역수지, 상품무역 수지 모두 2008년 이후 적자

    로 들어섰고 최근 적자폭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그나마 흑자를 유지하고 있던 경상수지 또한 지

    난해 10월부터 마이너스 영역으로 들어섰다. 만약, 우리나라의 대외 수지가 이런 모양을 보인다

    면 원화는 벌써 1,200원을 넘어섰을 것이다. 그럼에도 엔화가 폭락하지 않는 이유는 엔화가 국

    제 통화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일본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리고 그 가장 큰 동력은 무모해 보이는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이다. 만약, 아베가 무너진다면?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GDP 대비 정부 부채로 일본 경제는 급격히 신뢰를 잃을 것이

    다. 게다가, 아베 노믹스 실패로 다시 일본 경제가 침체된다면 이 부채 비율이 향후 몇 년 내에

    300%가 넘고 그 이후도 계속해서 높아지리라는 것을 시장이 이미 알고 있기에 그 속도는 감당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만, 시장은 그렇게 움직일 것이다.

    [그림17] 일본의 대외 수지 적자 확대 [그림18] 일본 정부 부채

    자료: BOJ,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자료: BOJ,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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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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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

    1,500

    2,000

    94/02 97/01 99/12 02/11 05/10 08/09 11/08

    (JPY bln) (JPY bln) Trade Balance(좌) Merchandise Trade Balance(좌) 국제 무역수지(좌) Current Account(우)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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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000

    600,000

    800,000

    1,000,000

    1,200,000

    1,400,000

    1988 1995 2002 2009

    (%) (eur JPY) 정부부채(좌)

    Percent of GDP(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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